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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신이 우선인 나르시시트 엄마

나르시시트 엄마는 자기 자신을 제일 먼저 챙긴다. 자녀보다 본인을 더 우선시 한다. 자녀가 무엇을 원하는, 다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신경쓰지 않으며 자기를 방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자녀 생일인데 엄마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러 간다던지, 자녀가 원하는 생일 선물이 있는데도 일방적으로 엄마가 마음에 드는 선물을 선택 한다던지, 어떤 것이든 엄마가 먼저 우선시가 된다. 나르시시스트의 엄마가 우선이 되야 하는 이유는 바로 통제와 조종이다. "닥치고 내 말 들어. 내가 시키는데로 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내 모든 부분에서 엄마가 내가 원하는 것을 물어보지 않았다. 엄마가 원하는 취향대로 살아왔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면 온갖 비난의 말을 들어야 했다. 옷, 음식, 머리, 학교, 진로, 친구, 애인, 돈이 먼저인 엄마에게 먼저 마음에 들어야 했다.

 

#2

엄마가 원하는대로 해주겠니?

1. 옷 

 

 

청소년기 이전에는 엄마가 사주는 옷만 입었다. 하지만 외모에 신경쓰는 중학생이 되서도 늘 엄마는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기를 바랬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엄마와 같이 쇼핑하는 것이 싫었다. 엄마가 평소 즐겨 입는 옷은 큐빅이 달려 있다던지, 큰 그림이 그려져 있다던지, 내가 원하는 티셔츠가 아니였다. 깔끔한 티셔츠가 좋은데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니가 고른거 이상해. 별로 안 예뻐. (엄마가 원하는 옷을 주면서) 이거 입어"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옷에 대한 비난은 계속 되었다. 내가 새로 산 옷을 보면 늘 이렇게 말한다. "너는 겨자색 안 어울려 그런거 입으면 이상해" "검은색 옷 사지마. 얼굴이 칙칙해서 안 어울려" " 달라 붙는 옷을 입으려면 살 빼고 입어"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자신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데 엄마의 인형 놀이에서 열심히 움직여야 비난을 받지 않는다. 

2. 머리

 

나는 중학생 때 앞머리 있는 머리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는 필사적으로 막으며 비난의 말을 한다. "너는 곱슬머리라서 앞머리 내리면 이상하니까 절대로 하지마. 엄마 말 알아들어?" 나는 엄마의 말을 들었다. 그 이유는 말을 듣지 않으면 벌이 주어지는데, 신체적인 학대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무섭고 두려워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지 못했다. 

 

3. 고등학교 진로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선택의 순간이 왔다. 나는 실업고를 원했고 엄마는 인문고를 원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말을 직접 한적이 있다. "엄마, 실업고 미용학과에 가서 미용사가 될래" 그리고 엄마는 나에게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한다. "실업고? 거기가면 공장가서 일해야 되. 공순이 되고 싶지 않으면 인문고 가서 대학이나 가. 세상이 다 니가 원하는대로 되는줄 아니?" 

 

4. 친구 

 

초등학생 때 나 포함에서 3명과 단짝친구가 있었다. 그 중에 한 친구는 공부가 상위권이였다. 이 사실을 알아버린 엄마는 나에게 말한다. "공부 못하는 친구 만나지 말고 공부 잘하는 친구 사겨" 이런 말 한마디에 공부 잘하는 사람 위주로 친구를 사귀려고 노력했었다. 

 

5. 남자친구

 

중학생 때 엄마 몰래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남자친구가 내 생일에 꽃을 선물해 주었다. 그 꽃다발 안에는 작은 카드가 있었고 나는 그것을 책상 서랍에 넣었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몰래 책상을 잘 뒤진다. 그러다가 그 카드를 보았다. 화가 난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남자친구를 만나? 당장 헤어져. 대학 가면 남자 많아. 알았어?" 남자친구 만나는 것까지 엄마의 허락이 필요했다. 다음날 나는 남자친구한테 헤어지자고 말을 했다. 

 

6. 돈 

 

성인이 되어서 알바를 해서 나에게 첫 돈이 생겼다. 20살부터 하고 싶은게 많았다. 친구들과 맛있는 것 먹기, 예쁜 옷 사기, 화장품 사기 등 말이다. 성인전까지 엄마가 원하는대로 살았기 때문에 내가 돈을 직접 벌면 자유가 생길 줄 알았다. 그러나 엄마가 나를 부른다. "너가 돈 관리를 하면 다 쓰니까 엄마한테 맡겨. 니 돈 하나도 안쓰고 시집갈 때 그대로 줄게" 알바비는 커녕 내가 직장을 다녀도 내 돈을 직접 만질 수 없었다. 나르시시스트 엄마가 직접 관리한다고 다 가져갔다. 결국은 시집 갈 때 내 돈을 볼 수 없었다. 

 

#3

비난의 말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나는 비난을 많이 받고 자랐다. 35살이 되어서도 인간관계에서 조그마한 비난에도 쉽게 상처를 받는다. 이미 마음의 다리가 무너진 상태라 물에 침수 되고 말았다. 덕분에 우울증을 얻어서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다. 가끔 죽고 싶은 생각도 하고 실제로 자살시도를 한적도 있다. 비난의 말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꼭 했으면 좋겠다. 마음이 아픈 사람이 직접 이 글을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과거를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현재를 살아가려는 희망에 댓글로 응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글을 읽어줘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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