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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입 다물면 돼

나르시시스트 엄마를 기록하면서 느껴지는 나의 감정은 죄책감이다. 엄마 뒷담화를 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어린시절부터 느껴졌던 수치심 때문에 실제로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숨길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꾸준히 억압하고 통제하는 엄마가 힘들다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거의 돌아오는 말은 "우리 엄마도 그래"라는 말이였다. 엄마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데도 나는 침묵을 지킨다. 나르시스스트의 특징은 자녀의 감정과 생각을 공감을 못한다. 엄마는 자기 자신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엄마의 인형이 된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느끼는 감정, 내가 느끼는 생각을 조종하고 통제한다. 예를 들어, 엄마가 가지고 노는 인형놀이에서 시키는데로 잘 움직여주면 최소한 나는 나를 지킬 수 있었다. 그것은 비난, 폭언, 폭력이였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자녀를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다. 자녀에게 병주고 약주기를 잘한다. 엄마의 인형놀이에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무조건 화를 내거나 얇은 옷걸이로 나를 때린다. 때리는 기준은 엄마의 감정기복에 따라 다르다. 나는 20대 초반까지 맞아가며 살았다. 엄마의 폭력은 화가 풀릴때까지 그 상황은 멈추지 않는다. 엄마의 감정만 중요하기 때문에 내 감정은 인형처럼 입을 틀어 막는다. 예를 들어 이런 말이다. 

 

병주는 말 : "(때리면서)야, 이 미친년아!! 엄마가 동생 잘 보라고 했지!!??" 
약주는 말 : "(안아주면서)사랑하는 우리 딸, 착하지! 엄마, 말 잘 들어야지!!!"

 

감정기복에 따라서 말을 하게 되면 어린 자녀에게 혼돈을 준다. 성인이 되면 엄마와 딸의 기억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 나의 기억은 병주는 말이였고, 엄마의 기억은 약주는 말이였다. 나도 엄마와 똑같이 화가 나있는데 옆에서 가스라이팅을 한다. 일명 꿀 발리는 소리에 나는 엄마의 진심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어릴때부터 이런 환경에 노출되면 더 이상 이상하다는 인지를 아예 못하게 된다. 나는 35살이 되어서 깨달았고 엄마의 실제 모습에 소름 돋아서 가까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르시시스트 엄마 밑에서 자녀가 정서적인 학대를 당하는 것을 구별하기 매우 어렵다. 나는 현재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으며 만성우울증 환자가 되었다. 그외 불안장애, 공황장애,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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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 엄마의 특징은 타인에게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 자신이 얼마나 자녀를 위해 얼마나 희생을 하고 있는지 알아봐주기를 바란다. 부모 역활과 자녀 역활이 바뀌는 것이다. 자녀는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이 기꺼이 되어준다. 왜냐면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12살에 엄마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어떤 엄마는 자식 버리고 도망가는데 나는 그렇게 못하겠더라"

 

나는 이런말을 듣고 '엄마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나를 버리겠다는 뜻이겠구나. 더 엄마의 말을 잘 들어야겠다' 나는 이렇게 생각을 했다. 나에게 죄책감과 미안함을 안겨주고 반대로 내가 엄마를 보호해주고 엄마는 보호를 나에게 보호를 받는다. 나는 마음을 편히 쉬고 둘 곳이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 당시에 내 감정은 너무 외롭고 외로웠다. 


나는 거짓말을 지켜주었다

 

내가 25살때이다. 3년동안 다니던 직장을 퇴사했다. 일중독자였던 엄마도 마침 일을 쉬고 있을 때였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딸, 모처럼 시간이 맞는데 우리 해외여행이나 갈까?" 엄마의 이 한마디에 나는 서유럽 패키지 여행을 알아보았다. 여행비용은 내 퇴직금으로 했고 모자라는 비용은 엄마가 냈다. 드디어 설레이던 여행이 다가왔다. 서유럽 파리에서 서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버스안는 우리 모녀 포함에서 두 커플의 모녀가 더 있었다. 장시간 버스 이동하면서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 수다를 떤다. 서로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첫 예상 질문은 빗겨 나가지 않았다.

 

 

"어떻게 여행 오게 되셨어요" 그러자 다른 엄마가 이렇게 말한다. "남편이 여행 가라고 보내줬어요" 평소 집안에서의 엄마 모습은 아빠가 돈을 못 벌어온다고 비난하던 사람였다. 엄마는 비교되는 남편의 모습에 자존심 상한 얼굴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미세하게 표정이 바뀌는것까지 눈치를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는 다른 엄마에게 말한다. "저는 우리 딸이 여행을 보내준거에요" 타인에 앞에서 엄마 체면을 세워야 할 때 항상 내 이름이 나왔다. 그리고 타인에게 나에 대한 평가를 매번 똑같이 듣는다. "어머, 좋으시겠어요. 착한딸, 효녀딸이네요" 착하고 효녀라는 말을 내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타인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자식을 이용해 타인이 엄마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중요하다. 

 

나르시시스트 엄마의 특징은 없는 사실을 만들어 거짓말을 하거나 있는 사실이지만 엄청 과정 되게 말한다. 그만큼 엄마의 체면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자식은 엄마의 인형놀이, 즉 도구에 불과하다. 이 자리에서 사실을 말한다. 나는 여행 비용을 전부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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